‘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청문회 ‘피노키오’ 그들

입력 2017.03.02 (15:01) 수정 2017.03.0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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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게 미용 시술을 생각한 적이 없습니까(자유한국당 최교일 의원)

"없습니다“(연세대의대 정기양 피부과 교수)

"김영재·박채윤 부부를 서창석 병원장에게 소개한 적 있습니까(바른정당 장제원 의원)

"그런 적 없습니다" (순천향의대 이임순 산부인과 교수)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온 연세대 정기양 교수와 순천향대 이임순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이 발언으로 두 명의 현직 의대 교수는 법정에 설 위기에 처했다.

정 교수는 청문회 증언과는 달리 특검 수사에서는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필러와 리프팅 시술을 세 차례 한 사실을 고백했다. 정 교수에 대해 특검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상 위증죄로 기소할 예정이다.

이임순 순천향대 산부인과 교수는 지난해 12월 14일 청문회에서 김영재·박채윤 부부를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에게 소개시켜줬느냐는 질문에 “그런 적 없습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청문회에서 서 병원장은 이 교수가 소개시켜 줬다고 증언했고, 김씨 부부도 이 교수의 소개 사실을 털어놨다. 이 교수의 '거짓말'은 조만간 법정에서 심판을 받을 예정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특검 수사가 지난달 28일로 종료된 가운데 특검은 기소 대상자 30명 중 13명에 대해 위증죄로 기소하거나 기소할 예정이다. 지난해 연말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 주요 증언들이 특검 수사 결과 ‘거짓말’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국회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은 청문회에서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정 위증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의 벌금’에 처하지만 국회에서의 위증은 더 엄하게 처벌하는 중범죄다.

이번에 위증죄로 기소된 13명은 대부분 자신의 범죄 혐의를 청문회에서 부인했다가 다른 범죄에 얹혀 위증죄가 추가된 경우다.


이화여대 최경희 전 총장의 경우 청문회에서 ”최순실씨를 정유라 학생의 어머니로 두 번 만난 게 전부”라며 애써 친분이 없음을 강조했지만, 이는 특검 수사와는 달랐다.

특검은 최 전 총장이 최씨와 여러 차례 만나고 수십 차례 통화한 사실을 파악했다. 청문회에서의 발언은 명백한 위증이라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이 밖에도 정유라 특혜를 부인했던 이대 교수들이 무더기로 위증 혐의를 받고 있다.

최순실씨 모녀를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했던 김경숙 전 이대 학장의 경우 정유씨의 입학 과정은 물론 입학 후 학점 관리에도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전 학장은 같은 대학 류철균 (필명 이인화) 교수 등에게 정씨 학점 부탁을 여러 차례 한 사실이 밝혀졌다.

좌파 성향의 문화예술인을 배제하는 내용의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해서도 관련자들이 대거 위증죄로 기소됐다.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를 모른다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관주 전 1차관 등은 직권 남용 등 다른 혐의와 함께 위증죄가 추가됐다.

전략적인 판단으로 위증죄 감수한 이재용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위증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연말 청문회에서 “(정유라씨에 대한 지원 사실 자체를) 나중에 보고 받았다”고 증언했다.

또 이 부회장은 “(2015년 7월25일) 30~40분 (대통령과) 독대했을 때 기부 얘기는 없었다. 문화 융성이란 단어가 나왔던 것 같은데, 나는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이 후 증언 내용을 뒤집었다.

그는 “대통령의 압박에 못 이겨 최씨 모녀를 지원했다”며 자신은 협박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청문회 때는 "지원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잘못된 증언이었고, 사실은 박 대통령의 압박으로 자신이 지원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위증죄 처벌이 불가피하지만, 최소한 뇌물죄 혐의라도 막아보자는 의도인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연관 기사] “박 대통령이 강하게 압박”…소환되는 이재용의 승부수

위증죄 기소, 무죄 판결이 대다수

문제는 이런 위증죄가 실제로 처벌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국회 청문회에서의 위증은 벌금형 없이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에 처해지는 중범죄다.

따라서 범죄 요건이 까다롭다.

형법상 위증죄나 국회 증언감정법 상 위증죄는 모두 ‘허의의 진술’을 할 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 판례는 허위의 기준을 ‘사실과 다른 진술’이 아닌 ‘증인의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했을 때로 본다.

즉 헷갈려서 자신의 기억에 반한다는 인식 없이 증언했거나 질문의 취지를 오해해 한 엉뚱한 답변은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법원 판례다.

대한생명 최순영 전 회장의 부인 이형자(왼쪽)와 동생 이영기씨. 대한생명 최순영 전 회장의 부인 이형자(왼쪽)와 동생 이영기씨.

실제로 법원은 과거 국회 청문회에서의 위증 사범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1999년 김대중 정부 시절 열린 ‘옷 로비 청문회’에서 최순영 전 신동아 그룹회장 부인 이형자씨와 동생 이영기씨가 위증 혐의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거짓말이라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005년 이라크 무장 단체로부터 피살된 김선일씨 사건과 관련해 가나무역 김모 사장도 위증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김 사장이 허위 발언을 했지만 이는 의원들의 추궁성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 것일 수 있다며 고의로 위증했다는 확증이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장 출신 한 변호사는 “거짓말을 했다는 게 정황상 명백한 게 아니고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차원의 위증이라면 현실적으로 위증죄 유죄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국회 청문회에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거짓말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 법원이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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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02 15:01:09
    • 수정2017-03-02 16: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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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게 미용 시술을 생각한 적이 없습니까(자유한국당 최교일 의원)

"없습니다“(연세대의대 정기양 피부과 교수)

"김영재·박채윤 부부를 서창석 병원장에게 소개한 적 있습니까(바른정당 장제원 의원)

"그런 적 없습니다" (순천향의대 이임순 산부인과 교수)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온 연세대 정기양 교수와 순천향대 이임순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이 발언으로 두 명의 현직 의대 교수는 법정에 설 위기에 처했다.

정 교수는 청문회 증언과는 달리 특검 수사에서는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필러와 리프팅 시술을 세 차례 한 사실을 고백했다. 정 교수에 대해 특검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상 위증죄로 기소할 예정이다.

이임순 순천향대 산부인과 교수는 지난해 12월 14일 청문회에서 김영재·박채윤 부부를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에게 소개시켜줬느냐는 질문에 “그런 적 없습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청문회에서 서 병원장은 이 교수가 소개시켜 줬다고 증언했고, 김씨 부부도 이 교수의 소개 사실을 털어놨다. 이 교수의 '거짓말'은 조만간 법정에서 심판을 받을 예정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특검 수사가 지난달 28일로 종료된 가운데 특검은 기소 대상자 30명 중 13명에 대해 위증죄로 기소하거나 기소할 예정이다. 지난해 연말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 주요 증언들이 특검 수사 결과 ‘거짓말’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국회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은 청문회에서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정 위증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의 벌금’에 처하지만 국회에서의 위증은 더 엄하게 처벌하는 중범죄다.

이번에 위증죄로 기소된 13명은 대부분 자신의 범죄 혐의를 청문회에서 부인했다가 다른 범죄에 얹혀 위증죄가 추가된 경우다.


이화여대 최경희 전 총장의 경우 청문회에서 ”최순실씨를 정유라 학생의 어머니로 두 번 만난 게 전부”라며 애써 친분이 없음을 강조했지만, 이는 특검 수사와는 달랐다.

특검은 최 전 총장이 최씨와 여러 차례 만나고 수십 차례 통화한 사실을 파악했다. 청문회에서의 발언은 명백한 위증이라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이 밖에도 정유라 특혜를 부인했던 이대 교수들이 무더기로 위증 혐의를 받고 있다.

최순실씨 모녀를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했던 김경숙 전 이대 학장의 경우 정유씨의 입학 과정은 물론 입학 후 학점 관리에도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전 학장은 같은 대학 류철균 (필명 이인화) 교수 등에게 정씨 학점 부탁을 여러 차례 한 사실이 밝혀졌다.

좌파 성향의 문화예술인을 배제하는 내용의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해서도 관련자들이 대거 위증죄로 기소됐다.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를 모른다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관주 전 1차관 등은 직권 남용 등 다른 혐의와 함께 위증죄가 추가됐다.

전략적인 판단으로 위증죄 감수한 이재용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위증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연말 청문회에서 “(정유라씨에 대한 지원 사실 자체를) 나중에 보고 받았다”고 증언했다.

또 이 부회장은 “(2015년 7월25일) 30~40분 (대통령과) 독대했을 때 기부 얘기는 없었다. 문화 융성이란 단어가 나왔던 것 같은데, 나는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이 후 증언 내용을 뒤집었다.

그는 “대통령의 압박에 못 이겨 최씨 모녀를 지원했다”며 자신은 협박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청문회 때는 "지원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잘못된 증언이었고, 사실은 박 대통령의 압박으로 자신이 지원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위증죄 처벌이 불가피하지만, 최소한 뇌물죄 혐의라도 막아보자는 의도인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연관 기사] “박 대통령이 강하게 압박”…소환되는 이재용의 승부수

위증죄 기소, 무죄 판결이 대다수

문제는 이런 위증죄가 실제로 처벌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국회 청문회에서의 위증은 벌금형 없이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에 처해지는 중범죄다.

따라서 범죄 요건이 까다롭다.

형법상 위증죄나 국회 증언감정법 상 위증죄는 모두 ‘허의의 진술’을 할 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 판례는 허위의 기준을 ‘사실과 다른 진술’이 아닌 ‘증인의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했을 때로 본다.

즉 헷갈려서 자신의 기억에 반한다는 인식 없이 증언했거나 질문의 취지를 오해해 한 엉뚱한 답변은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법원 판례다.

대한생명 최순영 전 회장의 부인 이형자(왼쪽)와 동생 이영기씨.
실제로 법원은 과거 국회 청문회에서의 위증 사범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1999년 김대중 정부 시절 열린 ‘옷 로비 청문회’에서 최순영 전 신동아 그룹회장 부인 이형자씨와 동생 이영기씨가 위증 혐의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거짓말이라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005년 이라크 무장 단체로부터 피살된 김선일씨 사건과 관련해 가나무역 김모 사장도 위증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김 사장이 허위 발언을 했지만 이는 의원들의 추궁성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 것일 수 있다며 고의로 위증했다는 확증이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장 출신 한 변호사는 “거짓말을 했다는 게 정황상 명백한 게 아니고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차원의 위증이라면 현실적으로 위증죄 유죄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국회 청문회에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거짓말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 법원이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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